

2000년10월24일 일본에서는 전체적으로 한국인이 하고 있는 게임방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1997년경 한국에서 게임방 프랜차이즈 성공으로 일약 IMF를 살려낸 효자 사업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더욱이 일본인들은 개인용 컴퓨터 보급률은 높았지만 사용법을 몰라서 컴퓨터를 쓰지를 못했다…
원인은 아마도 PC98시리즈(NEC) 인 일본도스(DOS-V)가 일본에서만 국한된 사용법과 호환성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ISDN사업 쪽에는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전화선 하나에 통신 및 전화를 사용한다고 하는 광고가 전국적으로 방영되고 있을 때 였다.
이것은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도 있었으리라…그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발빠르게 ADSL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해서 사용했지만 일본은 ISDN의 과잉 투자로 인해서 쉽사리 ADSL투자를 하질 못했다는 후설이다.
이유인 즉 한국은 ADSL을 이용한 일반 가입자가 늘고 있어 개인 네트워크 구축이 사실상 간단히 이루어 졌다고(동경신문에서 취재한 한국 게임방의 기사) 할 수 있지만 일본은 ISDN의 돈이 되는 사업을 NTT가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전화선 기본료에 인터넷 프로바이더(인터넷 연결업체)요금까지 노리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일본통신회사인 NTT는 국영 회사에서 민간회사로 되었지만 민간의 기업으로 넘어 갔어도 NTT가 국영이었을 때의 독보적인 입지는 무시를 못하는 것이다.
NTT의 비싼 통신료를 ADSL이라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놀라울 만큼빠른 통신시설이 있다는 것을 일본도 몰랐을 리는 만무하지만 워낙에 좋은 통신료(ISDN)의 포기를 쉽사리 하지는 못했다…
사실 NTT는 한국보다 (ISDN)사업을 확산시키려고 지방의 산골자기에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ISDN)의 교환기를 갖추었다고 한다.
1999년의 5월쯤 신주쿠의 쇼쿠안도리 의 한곳에서 한국사람의 의해 처음으로 게임방이 세워지고 그를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들과 현지의 교민들의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계열의 피씨 방을 만들려고 교민의 열풍은 대단했다! 또한 “만화찻집(망가 기사텡)”이라는 콘텐츠로 시작한 일본인들의 관심 또한 대단했다!

(필자의 사진…. 당시 인터뷰를 해주었다)
일본인,한국인,재일교포 등등..서로 이 사업에 뛰어들려고 난리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항시 문제는 있는 법이었다. 일본에서 통신 사업을 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서두에서 밝혔듯 일본의 통신 시장이 NTT에 의해 조정이 되고 있는 한 이 사업은 진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부 교민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치인의 힘을 빌려서 어렵게만 말하던 통신 시장에 T-1이라는 광케이블을 쉽사리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러자 같은 사업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 혼란에 빠진 것이다.
본인들은 가게도 얻기가 힘든 판에 한 달에 40만엥에 가까운 통신비를 지불하면서 게임방을 해야될 메리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굳이 이쪽의 사업을 하려고 뛰어든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설 때가 많았다.
그 중에는 공부를 목적으로 온 학생들도 있었고 한인사회에서 장사를 하던 분들도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가장 중요한 건 사업을 하려면 그쪽의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들 인터넷과 컴퓨터를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여러 업체를 만들 때 도와주게 되었다.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하지 않는가? 잘 모르면서 뛰어든 사업은 결국 오래갈리 만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주쿠에서만 8개의 가까운 게임방이 들어 서게 된다…우리넷, 넷타임, 월드넷, 하늘넷, 네트리안, 미션넷, 사이버넷,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신주쿠에 들어 서게 된다…그러자 닛뽀리, 우에노, 가와사키, 사이다마켄, 등에 살고 있던 교민들이 신주쿠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나는 그때 그런 교민들과 많은 상담을 했었다…..그들은 컴퓨터에는 전혀 전무한 이들이지만 많은 꿈에 부풀어서 오로지 수익 타산에만 급급했다.
글: 이 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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