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NECCA PC방 설치 자문 을….(잊혀지지 않는 사람 스토리..)

때는 바야흐로 1999년즈음의 나의(니키) 이야기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만 유난히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믿어 주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은 또 뜬금없이 글을 올리려는 이유가 잠을 자려고 이불에 들어서서 눈을 감고 양(?)을 세려고 하지만 옛 기억들이 느닷없이 떠올라서, 그중에서도 갑자기 기억이 나는 사람을 적어 놓고 기억하고 싶다.

이름은 “정재욱” 나이는 아마도 음… 나보다는 5~6살은 위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살던 시절 나는 꽤나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알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 주고 챙겨 주고 믿어 주었던 사람이었다.

먼저 정재욱이라는 사람을 알아보자면 일본에 부인과 같이 유학을 온 사람으로 한국에서는 꽤나 잘나간다고 하는 프로그래머이다. 교보통신에 있었으며, 연봉 8000만 원을 받을 정도의 우수한 인재였다.

그런 그가 일본에 온 이유는 미국이란 나라를 가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하지만 프로그래머였던 그가 일본에 살면서 IT 붐에 휩쓸리는 것은 만류할 수가 없었다.

정재욱 씨와 한 팀이었던 사람 중 한 사람 중에 약간은 고집스러우면서 책임감이 단단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의 꿈은 여러 가지지만 나와의 만남에서의 그의 목적은 “맥도날드에 무료 PC 환경”이었다. 그래서 항상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나 주제는 먹거리 프랜차이즈에 PC 사용 환경이 가능할 것인가? 였다.

그런 질문은 항상 나에게 물어왔고 나는 항상 고개만을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해야 했다. 그러다가 그분이 일본 주재의 SAMSUNG에게 컨텍이 되어서 시부야에 위치하고 있는 e-SAMSUNG에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은 한국에 테헤란의 꿈을 펼치려고 하는 삼성의 아지트…. 쇼룸이 있었고, 8층 정도로 된 빌딩에는 1층에 “e-SAMSUNG”이라고 쓰여진 쇼룸을 제외하곤 위층들은 전부 벤처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사업 계획서나 제안서를 만들어서 벤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 취지였다.

정재욱 씨는 거기에 합류한 것이었다. e-SAMSUNG에서 채택이 된 계획서가 정재욱 씨를 행동대장으로 밀어붙이는 상황… 이때 시부야에 엄청 큰 PC방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고…. 거기에 나를 포함시키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행동하고 일을 만드는 그런 입장이었다. 내가 광고 내고 일을 따는 남들이 소위 말하는 “사장”이었던 것이다… 일본에 IT 붐이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였고 한류 사회에서 내 손이 거치지 않은 PC방이 없을 정도였으니…. 거기다가 신문, 잡지, 방송 등등…. 매스컴을 많이 탄 입장이라 나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이때 정재욱 씨를 알게 되고 자신의 일에 합류를 시키려고 했으니 서로의 입장 차이는 항상 컸다. 그래서 만나면 항상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이상(일본에서 부를 때는 상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인다.) 이제 방황 그만하고 우리 조직에 들어와서 일하지 그래… 혼자 하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텐데… 이상도 알다시피 우리 ‘인터피아’ 백그라운드는 삼성인 거 잘 알잖나? 안 그래? 그리고 일본에서 공사 경험이 제일 많은 이상 도움이 필요해!”

그러면 항상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얼마 줄 건데요?”

“연봉으로 주지… 연봉 500만 엔에 스톡옵션을 달지… 3년쯤 되면 우리 주를 상장할 거야.. 그땐 재미있을 거라고…”

“에이~ 내가 어떻게 500만 엔에 목을 겁니까? 1000만 엔 주세요… 그럼 제가 갈게요…”

“이 사람아~ 난 한국에 있을 때도 8000만 원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줘! 안 돼!”

“그래서 안 된다고 했잖아요…… 이제 그만합시다… 난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사업이 잘되면 회사 하나 차려준다고 하잖나…! 왜 이러나 이 사람아!”

항상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이 나고 회식이 끝이 난다… 그러다가 e-SAMSUNG에 김 부장이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까지 항상 나에게 얘기한 것은.

“이상은.. 조직의 쓴맛을 아직 못 봤어…. 우리 조직에 들어오게나…”

뭐… 결국에 거절을 했고… 시부야에 있는 NECCA라는 거대한 PC방은 만들어진다… 이때 나는 관련 공사 참여자로만 관여한다… 직원의 명분이 아닌…. 타 업체…로…

이때 NECCA는 대단했다… 1년에 300점포를 목표로 하는 프랜차이저 사업이었다… 관련 업체와 매스컴의 관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정재욱 씨가 예견을 한 것마냥…. 이 공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일본에서 생활을 더 이상 개인의 사생활로 인해 진행을 할 수가 없어졌다… 나 이상으로 형님이었던 정재욱 씨에게 그런 개인의 일을 상담까지 하게 되었고, 한국에 간다는 말을 하고 나서도 끝까지 나를 놓치기 싫어했다…

“한국에 가서 뭘 하려고? 여기서 그냥 있게나…. 월급을 받고 생활하면 별로 문제없지 않은가?”

나는 “여기서 돈을 벌면 뭘 합니까? 내가 망가지고 있는데… 한국에 경기도 안 좋다는데 내가 가서 살려 놓아야지 않겠습니까?(^^)”

“허…. 이 사람…. 못 말리겠구만… 하여튼 힘들면 언제라도 오게… 알았지?”

“네에.. 정말 힘들면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 후 나는 한국에 들어와서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힘들게 한국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었고… 가끔은 정재욱 씨가 한국에 일을 보려고 오면 나를 코디네이터로 아르바이트를 시켜 주며 얼굴을 보려고 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식을 무렵 친구와 일본을 방문했고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부야에 있는 NECCA를 찾았지만 여전히 반가운 듯이 오랜 친구처럼 맞이해 주었다…

그 후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되어서 미국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밖엔 없는 그가, 나를 끝까지 믿어주던 그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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