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오토바이크(AUTOBIKE)잡지 객원 기자로 1년간 오프로드 이야기 기고 활약.
아쉽게도 보관하던 잡지가 유실되는 바람에 이미지를 보여줄수 없지만, 이즈음 현승만 기자의 부탁으로 일본에서의 오토바이 이야기들을 기고 해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된 스토리를 1년간 기고했었다.
2026년 현재 당시 기고했던 책자나 기사를 찾기 힘들고 세월이 많이 흘렀기에 이제 작성했던 그때의 기사를 여기에 적어봅니다.
아래 부터 기고 내용을 겨우 찾아서 적어 본다.
모터사이클의 역사: 레이스(RACE) – 슈퍼크로스(SUPER CROSS)
예전에 한때 오토바이 좀 탄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항상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슈퍼크로스(SUPER CROSS)’라는 새로운 장르의 레이스가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었다. 어느 정도 모토크로스(MOTO CROSS)를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슈퍼크로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볼 수 없는 슈퍼크로스가 앞으로 한국(KOREA)에서도 개최되기를 희망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원래 슈퍼크로스의 원조는 미국에서 1974년경 AMA(아메리칸 모터 협회)에 의해 시작된 경기다. 동양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슈퍼크로스 경기가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FIM(국제 모터사이클 협회) 주관으로 아시아권에서 대규모로 열린 공식 시합이 1992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일본도 멋지게 치러내고 성공시킨 슈퍼크로스를, 모터스포츠의 역사가 길어지고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못 하리란 법은 없다. 이국땅에서 성공 신화를 이룩한 슈퍼크로스가 한국에서도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원조인 미국에서도 모토크로스 시합이 슈퍼크로스로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고충이 따랐다. 모토크로스는 도로가 아닌 산이나 평야 등 자연환경을 이용한 장소에서 시합을 하다 보니, 모터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환경단체로부터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또한, 넓은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관람 포인트를 찾아다니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대중화된 시합을 원하는 관중의 목소리 또한 높아져 가던 시절이었다.
사실 모토크로스는 자연 그대로의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였지만, 경기 내용의 꽃은 역시 ‘점프’였다. 점프의 매력을 빼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매력적인 점프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흙이 필요했고, 그 흙은 결국 산이나 평야에서 채취해야만 했다. 처음 보는 관람객들에게는 경기장 포인트가 너무 넓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의 본고장인 미국 사람들의 머리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바로 “야구 경기장에 시트를 깔고 모토크로스를 시켜보자!”라는 시도였다. 이것이 대인기를 끌며 지금까지 온 것이다. 야외 경기장이 아닌 일반 야구 경기장의 잔디 바닥이 훼손되지 않도록 비닐 시트를 깔고 시합을 실시해 보니, 생각보다 일반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아 인기가 상승했다. 미국 협회 사람들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그때가 바로 1974년경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터스포츠는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후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에서 FIM 공식 시합이 열렸다. 오토바이 4대 지존인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일본에, 미국에서 내노라하는 일류급 선수들이 모여 순위를 다투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까지 가지 않고도 가까운 일본에서 초일류 선수들의 열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교적 성공적인 역사를 가진 일본의 슈퍼크로스는 아시아권에서 처음 시작되어 큰 호응을 얻었지만, 아쉽게도 짧고 굵게 끝나버린 역사가 되고 말았다. 슈퍼크로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당시 일본의 상황을 설명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시합 일정은 대략 3개월 전에 잡지 등을 통해 공지된다. 전년도 관람객들에게는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안내가 가며, 이전 좌석 정보 등을 고려한 예매 편의도 봐준다. 관람의 편의를 위해 평일에는 경기를 열지 않고 보통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된다. 토요일은 예선전을 치르고, 일요일에 본선을 준비한다.
지정 좌석제인 경기장에 관람객들은 일요일 아침 10시 전까지 도착해 자리를 잡는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머신은 모토크로스용 머신을 이용하며(슈퍼크로스 전용 바이크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배기량에 따라 클래스를 나눈다.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만이 일요일 본선에 나설 수 있으며, 한 번에 대략 15대 정도가 스타트 라인에 선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아동전(50cc), 여성전(80cc), 국제급(125cc), 국제급(250cc), ATV 클래스 등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다. 또한 점심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이벤트로, 배기량과 관계없이 점프 실력을 겨루는 ‘액션 점프 콘테스트’라는 묘기 대행진이 열렸다. 10점 단위로 점수를 매겨 특별 상금을 주기도 했다.
상금이 걸린 이벤트인 만큼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경기 진행자는 관람객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특별한 의상이나 몸짓을 선보이며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매년 단골로 등장하는 의상은 팬티 한 장만 입은 ‘벌거벗은 임금님’ 스타일이나, <드래곤볼>의 꼬리 달린 원숭이 의상 등이었다. 10월의 바닷가 경기장이라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였기에 그런 차림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장면이었다.
그렇게 경기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저녁 6시가 되고,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피날레를 알리는 불꽃축제가 시작된다. 불꽃놀이가 끝나면 슈퍼크로스의 하이라이트인 ‘국제급 250cc 파이널’ 경기가 시작된다. 각국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소유자들이 엔진이 터져라 싸우는 모습은 너무나 저돌적이고 멋지다.
슈퍼크로스는 야구장을 이용하다 보니 비교적 좁은 공간에 코스를 만든다. 좁은 구역에 많은 코너와 점프대를 배치해 선수들을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연습이 부족한 선수들의 부상도 잦은 편이다. 특히 ‘3단 점프’(점프대 3개를 동시에 넘는 것)는 슈퍼크로스만의 고난도 코스로 엄청난 테크닉을 요구한다. 아시아 선수들이 미국 본토 대회에서 이 3단 점프를 넘지 못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96년 재팬 슈퍼크로스에 출전했다가 3단 점프 실패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유명 선수들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3단 점프는 관람객들에게 짜릿한 전율을 남겨주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추운 겨울 바닷가 경기장에 모여든 것이다.
일요일 결승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250cc 경기가 끝나고 승자가 가려지면, 전광판과 사회자의 멘트를 통해 “내년에 꼭 다시 만납시다!”라는 기약과 함께 마무리가 된다. 경기장 밖에서는 각 메이커에서 홍보차 나온 대형 트럭들과 아름다운 레이싱 모델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니키)도 야마하 트럭 앞 ‘빙고 게임’ 홍보전에서 야마하 팩토리 팀 선수들의 사인보드와 모토크로스 하의를 선물 받고 기뻐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슈퍼크로스는 시작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큰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다. 이런 멋진 모습이 꼭 우리나라에서도 개최되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WEC의 영웅은 누가 될 것인가?
세계 각지에서 선두권 타이틀을 노리며 덤벼들고 있는 ‘월드 엔듀로 챔피언십(World Enduro Championship, 이하 WEC)’. 올해는 8회전인 프랑스 부삭(Boussac) 경기를 무사히 치르고 다음 해를 기약하게 되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남은 엔듀로 시합은 네덜란드에서 치러질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ISDE)’를 남겨두고 있다.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듀로 시합은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일 년에 8번이나 치러지는 WEC 시합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에, 엔듀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년까지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이다.
WEC 시합은 포인트 제도로 등수를 매기는데, 경기 도중 포인트를 잃지 않는 것이 우승의 관건이다. 클래스는 크게 E1, E2, E3로 나뉘며 하루에 한 경기씩 진행된다. 각 클래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배기량이다.
배기량이 적은 것부터 시작되는 E1(2사이클 100cc~125cc, 4사이클 175cc~250cc)을 필두로, E2(2사이클 175cc~250cc, 4사이클 290cc~450cc), 그리고 E3(2사이클 290cc~500cc, 4사이클 475cc~650cc)까지 나누고 있으며, 나머지 룰과 클래스 구분 방법은 FIM(국제 모터사이클 협회) 규정을 따르고 있다.
올 한 해는 스웨덴을 시작으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슬로바키아, 프랑스 순으로 개최 장소를 바꾸며 경기를 치러냈다. 어느 누구도 시합의 코스나 레이아웃을 미리 알 수 없으며, E1~E3 장르별로 코스가 변경되기도 한다.
시합은 약 이틀간(토요일, 일요일)에 걸쳐 하루에 E1부터 E3까지의 시합을 모두 치러낸다. 이튿날에는 이제 막 엔듀로의 꿈을 펼치려는 새싹들의 시합인 ‘주니어(Junior)’ 클래스 시합 또한 열린다. 주니어 클래스 참가 연령대는 14세 정도로 굉장히 어린 선수들이 많이 참가하지만, 시합 내용을 살펴보면 월드 챔피언을 꿈꾸는 주니어들의 실력은 성인 선수 못지않은 성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WEC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인상 깊은 장면들이 나오곤 한다. 그중 이번 프랑스 부삭 경기에서 지역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가 등에 아기를 업고 경기 진행에 참가하여 선수들의 페널티를 체크하는 모습은, 유럽 전체가 모터사이클과 함께해 온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라별로 쟁쟁한 선수들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강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주로 저배기량인 E1 시리즈에서는 90년대부터 핀란드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으며, 선수 한 명이 2년 연속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반면 대배기량인 E2~E3 시리즈에서는 스웨덴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우승을 차지해 왔으나, 요즘 들어서는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나이트(David Knight)’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꾸준히 포인트를 쌓고 있다. 유럽 선수들의 체구나 신체적 조건이 동양인의 골격과는 달라 다리가 길고 상체가 긴 요건이 오토바이를 타기에 유리한 면도 있을 것이다.
전체 참가 선수들은 WEC의 특별한 규정을 지켜야만 참가할 수 있다. FIM 규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여도 국제 시합 참가 경력 포인트를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다. 국제 시합 경기 포인트를 받기 위해서는 국제급 레벨 5위 안에 입상한 성적을 WEC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엔듀로 시합에서는 스타트 게이트에서 트러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관계로 엔진 시동에 관한 제약도 두고 있다. 스타트 게이트에서 지체하며 15분 동안 시동을 걸지 못하면 아예 출전할 수 없다. 더욱이 스타트 게이트가 아닌 곳, 특히 출발 준비 구역에서 미리 시동을 걸 경우 1분의 페널티(벌점)를 받게 된다.
이번 마지막 프랑스 8전 시합을 끝으로 월드 엔듀로 챔피언십은 막을 내렸지만, 내년 1월 15일까지 FIM 선수 등록을 마쳐야 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사실 중 하나다. 보통의 프로 선수들은 여러 시합을 중복해서 뛰다 보니 이러한 등록 시기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WEC 경기의 묘미라면 시합 내용 중 발생하는 이의제기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2006년 WEC 챔피언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되어 온 E1 클래스의 등수 문제로 선수와 팬들의 항의가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배기량이 큰 클래스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 유독 E1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적은 배기량급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나 근접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E3 클래스에서는 작년 시합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데이비드 나이트’가 우승을 거머쥐며 막을 내렸다. 가슴 설레는 월드 엔듀로 챔피언십은 내년 초, 스웨덴에서 눈밭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다음 호 ‘니키 이야기’부터는 실질적인 오토바이 세팅 방법에 대해 연재합니다 –
아시아의 작은 거인, 나리타 아키라 (NARITA AKIRA)
신세대 아메리칸 슈퍼크로스(SUPER CROSS) 선수이자 1980년생 일본 아오모리 출신, 혈액형 ‘O’형. 일본 4대 팩토리(FACTORY) 팀을 거쳐 미국 본토에서 활약하는 나리타 아키라 선수는 일본 모토크로스 챔피언의 역사(歷史)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아시아 출신으로서, 특히 일본 모토크로스 3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걸고 미국 슈퍼크로스 선수권 대회에 도전한 사례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모터스포츠 스타들이 그렇듯, 나리타 선수의 아버지 역시 모토크로스 국제 B급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리타 선수를 자신의 분신(分身)으로 키우고자 어린 시절부터 모토크로스 머신을 접하게 만들었다. (일본과 미국의 선수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5~6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오토바이를 시작했다.)
나리타 아키라 선수는 유년 시절부터 일본의 전설적인 챔피언들인 도우쿠치 선수나 와타나베 아키라 선수들과 어울리며, 선배들이 외국에서 배워온 고급 라이딩 테크닉을 전수(傳受)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일본 3년 연속 우승자의 선택
나리타 선수는 1998년 전일본(全日本) 모토크로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순위권 쟁탈전을 시작했다. 당시 18세라는 어린 나이로 국제급 250cc 레이스에서 3위 타이틀을 거머쥐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젊은 천재 라이더는 기세를 몰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하게 된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달리고 우승에 집착했던 이유는 일본인으로서, 또한 아시아인으로서 미국 슈퍼크로스 무대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진출을 위해서는 팩토리 팀과의 계약 해지(契約解止)가 급선무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프로 라이더 개념이 부족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연간 단위로 계약하는 프로 선수들은 팩토리 팀과의 계약 조건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 내 시합에만 출전해야 하는 제약이 있었다.
계약 기간 중에는 타 시합 출전이 철저히 금지되었고, 만약 불의의 사고라도 당한다면 즉시 계약 해지를 통보받기에 프로 라이더들 스스로 각별히 몸조심을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2002년 스즈키 선수로 활약하며 연속 우승을 차지했을 때 나리타 선수는 전일본 모토크로스계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도 스즈키 소속으로 우승을 거머쥔 그는, 마침내 미국에서 꿈을 펼치겠다는 의지 하나로 팩토리 팀과의 이별(離別)을 통고한다.
동양인의 의지
치밀한 계획 아래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80년생의 젊은 나리타 선수에게도 현실적인 부담은 컸다. 그동안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모은 돈을 전부 미국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일본 국가대표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야 했다.
일본은 세계 4대 메이커가 양산 모델을 만들어 전 세계에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자국 선수들에게는 인색한 면이 있었다. 일본 오토바이 협회(MFJ) 차원에서도 국외로 진출하는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부족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숙소와 출전용 웍스(WORKS) 머신을 순수 자비로 마련하며 도전을 이어갔다.
슈퍼크로스가 시작된 후 몇몇 일본 선수들이 미국 무대의 문을 두드렸으나, 알다시피 슈퍼크로스의 코스 구성은 동양인에게 어색한 섹션이 많았다. 더욱이 야외에서 낮에만 경기를 치르는 모토크로스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종목이고, 일본 내에는 슈퍼크로스 장르의 시합이 없는 탓에 그간 출전했던 일본 선수들은 번번이 부상에 시정해야 했다. 무시무시한 3단 점프와 산처럼 높은 워시보드(Washboard) 섹션이 기다리는 미국 오리지널 슈퍼크로스 무대에서 자력으로 살아남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미래를 위해 달린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20대에 들어선 나리타 선수는 여타 선수들과는 달랐다.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마인드 자체가 남달랐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일본의 전·현직 프로 선수들도 소홀히 했던 자신만의 미래를 위해,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일본 모토스포츠의 위상을 높여왔다.
2006년 새해, 그는 다시 미국으로 가기 위해 혼다(HONDA)가 아닌 야마하(YAMAHA)로 소속을 옮겼다. 하지만 이 역시 대형 팩토리 팀이 아닌 일명 ‘프라이베이터(Privateer)’ 팀에 합류한 것이었다. 2001년 AMA 모토크로스 시합을 계기로 미국 무대를 접한 나리타 선수는 2005년 미국 애너하임(ANAHEIM) 슈퍼크로스(125cc)에서 3위로 골인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모든 투자와 의지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준 투혼의 산물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거인이 되길
아직 모터스포츠 역사가 미비한 한국에게 일본의 모토크로스 환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리타 선수가 앞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주고 기반을 닦아 놓는다면, 훗날 한국 모터스포츠가 발전했을 때 우리 선수들도 미국 땅을 밟을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슈퍼크로스나 모토크로스처럼 30~40분간 풀타임으로 시합을 치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데, 나리타 선수의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닌 ‘한국산 BBQ 치킨’이라고 한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좋아하는 음식 1순위로 한국 치킨을 꼽을 정도다. 나리타 선수도 한류 열풍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혹시 남이섬에서 일본인 할머니들 사이에 섞여 있는 그를 보게 된다면 웃음이 절로 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모토크로스를 잘 타려면 비비큐 치킨을 많이 먹어둬야 할 것 같다. 나리타 선수 다음으로 이 잡지를 읽고 있는 당신이 미국 슈퍼크로스에 나가 아시아의 작은 거인, 아니 큰 거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다카르 랠리, 그 황무지를 향한 도전
1979년부터 2006년 지금까지 27년 동안 이어진 ‘파리-다카르 랠리’에 한국 모터사이클 출전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던 황무지 같은 시합 무대. 그곳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애마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머릿속 상상이 아니라 점차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나라 모터사이클 선수가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프랑스 현지까지 가서 시합을 치르는 데 드는 경비와 절차를 알아보고자 한다.
다카르 랠리는 창시자의 개척정신이 우선되는 경기이다 보니,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를 가리지 않고 출전 신청을 받는다. 오히려 프로보다는 아마추어 선수에 대한 배려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는 우승을 목표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완주만으로도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큰 환영을 받는다. 그래서 랠리 주최 측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독려 차원에서 시합 완주만으로도 꽤 괜찮은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 실력 있는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 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다카르 랠리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고, 그 상금까지 얻어온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겠다.
모터사이클을 마련해야 한다
메이커, 기종, 튜닝 여부와 관계없이 랠리 시합 중 자신의 분신이 되어줄 바이크를 정하는 것이 시합 완주와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예산을 바이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시합 일정과 현지 체재 일정을 고려한 여비를 확보해두는 것이 옳다. 시합 코스 특성상 사막을 달리는 기종을 선택해야 하므로, 어떤 바이크를 선택하더라도 머신 자체를 가볍게 만드는 정도의 튜닝은 필수적이다.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기종으로는 혼다 XR650, 스즈키 DR650SE, KTM 어드벤처 시리즈 등이 있으며 가격대는 신차 기준으로 1,200만 원에서 2,000만 원 수준이다. 가급적 배기량이 높은 머신이 유리하다.
비자와 여권
프랑스 랠리 사무국에서는 코스에 포함된 나라들의 비자(사증)를 미리 발급받고 출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통과 지역 중에는 공산국가가 포함되어 있거나 외교 수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 중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수립된 국가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코스 통과 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모리타니, 말리, 기니의 사증은 본인이 여행사를 통하거나 직접 대사관을 방문해 발급받아야 한다.
여권은 서울 기준으로 종로, 강남, 영등포, 노원, 동대문구청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5년 복수여권 기준 약 5만 원 선)
[사증 발급 기관 안내] 전문 여행사를 통한 대행 신청이 보편적이며 시간을 아끼는 차원에서 대행 시스템을 권장한다. 현재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는 비자 협정을 마친 상태이므로 여권만 있으면 입국이 가능하다.
- 모로코(Morocco): 한국인은 최장 3개월 무비자 입국 가능.
- 모리타니(Mauritania): 프랑스 대사관에서 발급. 비자 신청 비용 미화 약 50불.
- 세네갈(Senegal): 주한 세네갈 명예영사관에서 발급. 비용 한화 약 7만 원.
- 기니(Guinea):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직접 받을 수 없으며, 프랑스 현지 대사관이나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받는 방법이 있다. 대행 비용은 약 30~40만 원 수준이다.
- 말리(Mali): 말리 명예대사관에서 발급. 신청 비용 미화 약 80불.
(주의: 아프리카 현지를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은 각종 예방접종을 약 한 달 전에는 미리 마쳐야 한다.)
모터사이클의 운반 및 부품
해외 운송 전문 업체가 많으므로 프랑스 현지까지 바이크를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박은 컨테이너 단위 운송이라 비싼 편이며, 단독 참가의 경우 비행기 운송이 효율적이다. 가르네 무역 신청, 보험, 세관, 박스 포장, 왕복 운송료 등을 포함해 약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항공 화물 규격에 맞는 나무 박스 작업을 마쳐야 하며, 이때 시합에 필요한 타이어, 오일, 핸들 등 소모성 부품을 같이 동봉해야 한다.
랠리 참가 비용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가할 아마추어 부문의 참가 비용은 바이크 한 대당 약 1,600만 원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이 비용에는 배를 이용한 코스 이동 요금, 100여 명의 안전 요원과 50여 명의 의료 요원 지원, 식사 및 수리 도구 공급을 위한 항공기와 헬리콥터 이용료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현지 숙박 및 부품 이동
랠리 일정이 1만 km에 이르기 때문에 구간별 이동 시 별도의 숙박비가 들지는 않지만, 식사와 부품 공수를 위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절실하다. 랠리 참가 차량 중 트럭 참가자들에게 대행을 맡길 수 있다. 타이어 2개 정도의 공간을 빌려 이용하는 비용이 구간별 약 30만 원 정도다. 자신의 식량과 부품을 운반해 줄 조력자를 미리 찾아두지 않으면 랠리 참가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지 운송 및 렌트비 등을 포함한 예상 금액은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다.
드디어 프랑스로…
준비 과정을 마친 후 직접 프랑스 협회에 가서 접수하고 코스 현지 답사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항공권, 참가비, 유지비, 운송비, 부품비, 바이크 구입비 등을 모두 합치면 적게는 1억 원에서 1억 5천만 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수치만 따진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에 혀를 내두를 수 있지만, 참가의 가치가 빛나는 경기이기에 아마추어로 완주만 해도 파리-다카르 랠리 공식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다. 목숨을 건 위험한 경기 끝에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1억 원이라는 금액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만약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지어 우승이라도 한다면 약 7,000유로(당시 약 9,000만 원)의 상금이 돌아온다. 참고로 파리에서 세네갈 다카르까지 자기 바이크의 기름값은 항상 휴대하는 센스를 잊지 말자.
재팬 슈퍼크로스의 흥망성쇠: 버블 경제와 레이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일본 슈퍼크로스의 실패(失敗)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보다 부자 나라라고 느껴지던 일본이 한때 건축·건설 붐이 일어나 ‘버블(Bubble) 경기(景氣)’로 돈이 차고 넘쳐나던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일본 건설경기가 최대 호조(好調)를 이루고 있었을 때, 경제 자체는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이는 버블 경제로 들어섰고 사람들은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이, 나의 일본인 친구가 젊은 시절 조그만 술집을 운영할 때 들어오는 손님들이 음식값을 제외하고도 팁으로만 5만 엔(당시 환율로도 상당한 금액) 정도는 쉽게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한 시절을 회상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과 저금리 시대의 파고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었다. 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가 정점에 달했을 시절, 일본의 시장 규모는 세계 2위에 달했다. 미국 정부도 무서워할 정도로 성장하던 일본 경제 속에서 모토크로스 역시 큰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장르인 슈퍼크로스가 인기를 끌자, 일본 케이블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본 일본인들 머릿속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고, 일본 오토바이 협회(MFJ)에서는 즉시 시행에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 최초라고 불릴 수 있는 슈퍼크로스는 1982년 11월 23일, 도쿄 ‘고라쿠엔’에서 ‘코카콜라 재팬 슈퍼크로스’라는 타이틀로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역시 자본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기업들이 “투자는 곧 소득”이라는 생각으로 대외 홍보비를 아낌없이 쓰던 풍족한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다.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일본 국내에서 오프로드 바이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는 곧 제조사의 매출과도 직결(直結)되었다. 따라서 슈퍼크로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합이 활발히 열렸다. 경기 협회인 MFJ는 기업들이 경기 개최 사실을 통보하면 서로 홍보에 나서겠다고 줄을 서던 상황이었고, 일본 국내 4대 오토바이 제조사(製造社)의 역할 또한 매우 컸다. 미국에서 개최되는 시설과 인력을 통째로 옮겨와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버블 경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기 침체(沈滯)와 더불어 각 메이커의 매출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경비 절감을 위해 안달이 났고, 실질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던 레이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삭제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도쿄 슈퍼크로스’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도쿄 시내 도쿄돔(Tokyo Dome)에서 진행되던 시합이 기업 투자가 줄어들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결국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치바현’의 ‘치바 마린 스타디움’을 빌려 부랴부랴 경기를 치렀으나, 주요 관객층인 도쿄 거주자들이 거리상의 이유로 경기장을 찾는 발길을 줄여 나갔다. 나 또한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도쿄에서 치바 마린 스타디움까지 가곤 했으나, 거리가 멀고 기온이 낮아 관람에 어려움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전·현직 라이더들과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 슈퍼크로스는 경기장이 치바로 바뀐 이때 즈음부터 많이 퇴색(退色)되었다고 기억한다. 슈퍼크로스는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국제 레이스였기에 협회 수익과 관람료만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했다. 메인 스폰서였던 4대 메이커와 각 업계가 광고비를 줄이며 서서히 물러나자, 재팬 슈퍼크로스는 결국 역사(歷史) 속으로 사라져가게 된 것이다.
단순히 규모만 키운다고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해외 홍보를 통해 시합의 격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미국의 톱 라이더들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돔 구장이나 야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 특성상, 돈으로만 치장했다면 관객들에게 외면받고 야구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을 것이다. 연중 최고 인기 행사인 ‘일본 시리즈’ 때문에 경기장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철저한 계획으로 인지도를 높여 성공시켰던 재팬 슈퍼크로스도 자금 압박과 새로운 스타의 부재 속에 결국 퇴출당하게 된다.
여기에 외국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 사이의 현격한 기량 차이도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국제 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일본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으나 결과적으로 참패를 이어갔고, 일본인 관객들은 “왜 저렇게 차이가 날까?”라는 허탈함만을 안고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99년 경기를 마지막으로 대회는 중단되었다.
공식 대회만 8회에 이르렀던 재팬 슈퍼크로스. 이제는 그런 대회가 있었느냐고 물을 정도로 조용히 역사 속에 묻혔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며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스포츠를 원하게 되었고, 이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새롭게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화려하게 시작했으나 자금 문제로 물러난 재팬 슈퍼크로스. 레이스의 정점이자 매스컴 성공의 상징이었던 이 대회가 한국에서도 언젠가 개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담이지만, 질서와 원칙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도 슈퍼크로스 경기장 주변만큼은 우리나라처럼 ‘암표상’들이 활개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열기가 뜨거웠다는 증거이니, 우리에게도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 엔듀로 (ISDE)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필자의 전성기 시절인 옛날로 돌아가 멋지게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천진난만한 상상을 문득 해보곤 한다. 오토바이를 워낙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가끔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을 때가 많다.
한때의 멋진 전성기를 만들어준 오토바이는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 엔듀로(ISDE)’와 같이 역사가 깊은 시합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성능 좋고 멋진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같이 좋은 날씨에 거리를 걷다 보면,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시합을 치러왔을까?” 하는 상상에 절로 웃음이 나곤 한다.
바이크의 내구성 없이는 불가능한 엔듀로
‘엔듀로(Enduro)’라는 시합은 사전적 의미로만 보았을 때 ‘장거리 경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엔듀로가 어떠한 시합인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만, 시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구조(Rescue)’의 의미에 있다는 점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엔듀로 코스는 장거리 위주로 구성되는데, 이는 인명 구조라는 목적성도 있지만 기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오토바이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데 큰 목적이 있다. 평소 엔듀로를 ‘인간과의 커뮤니티’라고 강조해온 필자의 지론을 덧붙이자면, 온로드의 내구 레이스처럼 트랙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시간만을 다투는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엔듀로의 거리 계산 방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랠리’의 의미와도 사뭇 다르다. 룰 자체로만 따진다면 크게 유럽 방식과 미국 방식으로 나뉜다. 하루 평균 300km에 달하는 지형을 달려야 하며, 코스는 사전에 개방되지 않아 오직 라이더의 경험과 감각만으로 돌파해야 한다. ‘식스 데이즈’라는 이름처럼 본래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동양인의 체력과 기량,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보통 3일 정도로 단축해 개최되기도 한다.
엔듀로 바이크는 긴 시간 동안 참가 선수뿐만 아니라 기계 자체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는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긴 여정의 레이스를 마치려면 사람뿐만 아니라 바이크의 체력(내구성) 역시 버텨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다.
미국 방식 vs 유럽 방식
스피드와 화려함을 고집하는 미국 방식의 룰은, 마치 동계올림픽 당시 ‘할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했던 안톤 오노 선수처럼 시각적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데 치중해 있다. 모토크로스를 작고 아담한 돔 구장에서 할 수 있도록 점프 구간 등을 넣어 만든 ‘슈퍼크로스’가 대표적인 미국식 룰이다. 미국 내 경기는 내구성을 증명하기보다는 다분히 소모적인 성격이 강했다.
반면, 철재 가공 능력이 뛰어났던 유럽인들은 구조물을 알루미늄이나 합금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가공하여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재질로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기술 발전을 통해 오프로더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부품과 설계 단계부터 완벽한 내구성을 갖춘 머신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지역은 오랜 역사와 장인정신을 이어가는 튜닝숍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수십 년간 레이스만을 고집해온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엔듀로의 핵심 룰, 온타임(ON-TIME)
모토크로스에는 없는 엔듀로만의 특별한 룰이 바로 ‘온타임(On-Time)’ 제도다. 국내 시합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제도는 유럽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씨름과 같은 민속놀이처럼 당연한 규칙으로 인식되어 왔다.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치며 외국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 온타임 룰이 다소 생소하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온타임이란 구간과 구간 사이의 이동 시간을 주최 측에서 미리 정해 놓은 규칙이다. 이는 선수의 실력과 관계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들어와야 하는 룰이다. 주로 SS(Special Stage) 코스에서 이를 정확히 측정하는데, 예를 들어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의 시간을 1시간으로 정해 놓았다면 정확히 그 1시간 안에 골인해야 한다. 이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즉시 페널티(벌칙)를 받게 된다.
시간 규칙을 정해놓은 이유는 단순하다. 코스 이탈자를 방지하고, 국제 모터사이클 연맹(F.I.M)에서 정한 과속 방지 지침을 따르기 위함이다. 코스가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채 전혀 모르는 곳을 달려야 하므로 위험 요소가 많았고, 그로 인한 부상자 속출을 막기 위해 속도를 제한하게 된 것이다. 온타임 제도는 과속 방지와 변칙 코스 주행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며 시합의 맥락을 유지해 왔다.
페널티(벌칙)가 시합의 생명
엔듀로 시합의 생명은 페널티에 있다. 이는 공정한 시합을 보장하며 선수 본인의 안전을 유도하기 위해 존재한다. 스피드만을 겨루는 일반적인 오토바이 시합에서는 페널티를 보기 힘들지만, 유럽에서 파생된 엔듀로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이다.
한꺼번에 출발해 순위를 가르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는 유럽식 법칙은, 갤러리나 오피셜(감독관)이 없는 곳에서 선수들이 코스를 악용할 우려를 방지해야 했다. 매년 국가를 바꿔가며 열리는 ‘식스 데이즈’의 경우, 자국 출신 선수들이 지형 숙지 면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보완하고 공정성을 기하고자 엄격한 페널티를 적용해 왔다.
엔듀로는 이러한 페널티 제도를 통해 전 세계 선수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며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고, 오늘날 세계 각국이 대표 주자를 내보내는 ‘엔듀로 올림픽’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의 올림픽: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 엔듀로(ISDE)
오프로더들의 곁에는 항상 그것(?)이 있었다. 우리 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레이스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엔듀로(ENDURO)’다. 이번에는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탄생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 엔듀로(International Six Days Enduro, 이하 ISDE)’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엔듀로라는 종목의 레이스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이지만, 유럽 본토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모터사이클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엔듀로 머신의 원조 탄생지인 유럽에서는 매년 한 번씩 각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여 장거리 랠리를 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ISDE의 시작이다. 이미 흘러온 역사만으로 100년에 가까운 시간과 과정이 숙성된 오프로드, 아니 모터사이클 레이스 역사상 가장 ‘할아버지 격’인 레이스임을 자부한다.
ISDE는 영국 칼라일(Carlyle) 호수에서 최초로 개최된 후, ‘모터사이클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지금까지 전 세계 오프로드 마니아들에게 알려져 왔다. 오랜 전쟁을 겪었던 유럽 국가들은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고자 했고, 오토바이 시합은 전쟁의 상처와 적개심을 풀어주는 일석이조의 잔치가 되어 주었다.
엔듀로의 탄생 목적은 ‘산악 구조’
산악 지형만을 달리고 이동하게 만들어진 전용 오토바이가 사실상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보니, 초기 ISDE에 참가했던 오토바이의 생김새는 지금의 신형 모델과 비교하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오토바이로 사람을 구하기도 했는데, 유명한 구조견인 ‘세인트버나드’와 같이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두 바퀴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엔듀로 레이스가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탄생 자체가 ‘산악 구조’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경기 진행의 모든 요소를 자연 그대로 이용해야만 했다. 구조가 필요한 지역이 발생하면 비탈길과 내리막 험로를 사람보다 빠르게 통과하여 구급약품과 식량을 전달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2~3년 전 태풍 피해를 본 강원도 지역을 엔듀로 동호인들이 망가진 산길을 뚫고 들어가 고립된 주민들에게 식량과 구조 물자를 전달하며 큰 도움을 준 사례가 있다.)
시작이 그러했듯이, 시합의 진행 또한 상당히 긴 장거리이며 산악의 험로 지형을 일부러 다듬지 않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형태 그대로를 이용한다. ISDE가 낳은 결과는 단순히 오토바이 시합을 연 것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커뮤니티(Community)’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
ISDE는 말 그대로 6일간의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레이스다. 코스는 구간별로 나뉘지만, 보통의 도로와 산악 험로를 오직 혼자의 힘만으로 치러내야 하는 대장정이 펼쳐진다. 하루 평균 이동 거리가 300km에 달하다 보니 머신의 트러블과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경기 진행 중에 발생하는 타이어 펑크, 엔진 트러블, 신체 부상 등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본인이 지참한 장비만을 이용해 모든 상황을 소화해야 한다. 이는 산악 구조라는 본래의 의미에 근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참가 선수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스스로 정비할 줄 알아야 하며,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도와줄 수 있는 아량도 갖춰야 험난한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시합 코스는 대부분 산악이며 때로는 일반 도로가 포함되기도 한다. 규정상 코스 발표는 항상 당일 오전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수들의 노련한 경험치가 6일간의 시합 무사 완주를 결정짓는다. 배기량별로 클래스를 나누고 있어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가 함께 어우러져 경기를 치르는 것 또한 ISDE의 묘미다.
국가대표들의 각축장
ISDE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기량 있는 선수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대회 장소는 매년 전 세계의 지형 좋은 곳을 선정해 순환 개최된다.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는 모든 라이더의 열정적인 참가와 오랜 전통이 뒷받침되었다. 유럽인들에게 ISDE 우승은 구기 종목의 올림픽 금메달과 똑같은 영광을 안겨준다.
기술 발전에 기여한 엔듀로
일반적인 오토바이로는 주행이 불가능한 코스를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달려야 했기에, 시합을 통한 시행착오는 곧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제조사들은 시합에서 겪는 머신의 트러블을 데이터화하여 성능을 개선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기계적 성능, 디자인의 혁신, 각종 케미컬(오일, 스프레이 등)의 발전은 모두 극한의 레이스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다. 소비자의 욕구가 높아질수록 레이스는 더욱 험한 곳으로 향하며 기계 성능의 한계를 시험해 왔다.
아시아로 번지는 엔듀로의 열기
유럽에서 시작된 엔듀로 룰은 이탈리아, 프랑스를 넘어 아시아 국가들로 서둘러 도입되었다. 아시아는 경제 성장과 머신 도입 시기가 늦어 출발은 늦었지만, 열기만큼은 어느 지역보다 뜨겁다. 모터스포츠 선진국인 일본조차 엔듀로 도입은 약 20년 전이었고, 우리나라는 이제 10여 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태국, 대만, 중국 등지에서 넓은 지형을 이용한 FIM 주관 장거리 레이스가 활발히 열리며 시합 규모가 커지고 있다. 100년 역사의 유럽 룰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본 북해도의 ‘히다카(HIDAKA)’ 레이스처럼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를 본보기 삼아 발전하고 있다. 비록 도입 시기는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정확한 룰을 이용한 시합이 활성화되어 세계적인 ISDE 무대에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켜야 할 때라고 본다.
흙에서 태어난 기계: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역사와 본질
가을이 왔다. 산에는 단풍이 물들고 있을 때, 니키의 마음은 이미 산중의 빨간 단풍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달리는 꿈을 꾸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나라도 세계적으로 드문 편이지만, 아직 도로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온로드(ON ROAD)가 차지하는 비율은 너무나 높은 것 같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산 이야기를 꺼냈느냐 하면, 지난 호에서 모터사이클 역사 이야기를 잠시 꺼낸 것처럼 오토바이의 태생은 본래 흙(오프로드, OFF ROAD)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지형이 비슷한 유럽 국가들 중,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경우를 보자면 오토바이를 전쟁용으로 아주 참신하게 잘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래서 오토바이는 흙을 빼놓고는 발전사를 논할 수 없다.
지금은 도로라고 불리는 검은색 아스팔트가 처음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과학자들에 의해 자동차 전용 도로(아우토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많은 분이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당시 흙길을 달리기 위한 수단으로 독일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였던 BMW가 오토바이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우리가 흔히 럭셔리 자동차 메이커로 알고 있는 BMW는 사실 오토바이를 먼저 생산하고 상업화시킨 회사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럽 국가들에 막대한 배상 책임을 졌던 독일로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값싸고 쓰임새가 많았던 오토바이를 적절히 사용한 기록이 있다. 당시 패망 직후의 독일은 물자가 부족하고 재정적으로 바닥이 났던 시절이라, 군인들의 보호 장구인 철모(鐵帽)를 제대로 보급하지 못해 일반 모자를 배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극적인 전쟁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술 과학 발달에 이바지했고, 모터사이클 역사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셈이다.
오토바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타이어와 열처리 기술이 정교해지고 다양한 금속류가 사용되면서, 오토바이 역사는 ‘레이스(RACE)’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게 된다. 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레이스를 진행해온 과정도 전쟁 중 잠시나마 평안을 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레이스가 열리고 각종 머신이 출전해 순위를 다투면서 인류의 기술은 더욱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다.
“그런데 레이스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제조사들조차 확실한 답을 내놓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 그리고 레이스를 관람하는 관객이 곧 잠재적 고객이기에 제조사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인간도 진보하는 것이 레이스의 묘미다. 인간은 승부의 본성(本性) 때문에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역설적으로 안전하게 타는 법도 배워야 했다. 사람이 기계를 다루기에 오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DATA)가 필요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인간을 보호하는 레이스로 빛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인간은 레이스장에서 승부(勝負)를 겨루고, 기계는 성능(性能)을 겨루는 장터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레이스가 있었을까? 과거 우리나라는 트랙 레이스가 주류였다. 남자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근성인지 본성인지 몰라도 오프로더들은 흙에 미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경기 내용을 보면 효창운동장 등 서울과 전국 각지의 운동장에서 꽤 규모 있게 열렸다. (당시는 3S 정책 등으로 스포츠 관련 사업이 쉽게 허가되고 육성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운동장에는 잔디가 없었기에 흙 위 트랙에서 시간을 다투는 레이스를 펼쳤고, 이로써 한국의 오토바이 역사 또한 흙에서 시작된 셈이다.
한국 모터사이클계의 전설적인 원로들도 다 이때 등장해 이름을 남겼다. 점프 신기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선배님들도 계시며, 이런 기록들은 우리나라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전성기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계 산업 개발은 보통 자전거 → 오토바이 → 자동차 순의 3단계 발전 원리를 따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메이커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륜차 부문만큼은 다른 산업의 성공 신화에 비해 발전을 거듭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어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고 실망만 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 바이크는 거대한 덩치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과거 미국 경찰들의 순찰 오토바이는 대부분 4기통 엔진을 장착한 일제 가와사키(KAWASAKI) 제품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은 주로 영사관 호위 등 에스코트용으로만 쓰였다. 우리가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드라마 <기동순찰대(CHiPs)>에 나오는 오토바이 역시 가와사키 제품이었다.
하지만 19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미국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작전(?)을 세웠고, 경찰 오토바이를 할리데이비슨으로 전격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계 산업의 발전에는 국가적 자부심과 체계적인 육성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이륜차 산업에서 다시금 도약하여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할 날을 꿈꾸어 본다.
젊음의 분출구, 모토크로스(MOTOCROSS)의 세계로
바야흐로 2006년 21세기, 우리는 끓어 넘치는 젊은 혈기를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모른다. 익스트림, 스피드, 그리고 굉음… ‘오토바이’라는 단어는 젊은 피를 끓게 만드는 흥분제가 분명 포함되어 있다. 이 흥분을 분출할 출구는 어디인가? 자연과 흙, 먼지가 어우러져 스피드를 만끽하는 시합, 바로 ‘모토크로스(MOTOCROSS)’가 그 해결책이다.
서기 1924년경, 영국에서 혈기 왕성한 이들이 사고(?)를 쳤으니 그것이 바로 모토 크로스컨트리(Moto Cross-Country)의 시작이다. 정식으로 ‘모토크로스’라는 명칭이 붙어 경기가 열린 것은 프랑스였지만, 어찌 되었든 모토크로스는 젊음의 상징이요,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요소이니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며칠 전부터 오프로드를 사랑하는 현승만 기자와 만담(?)을 나누다 보니, 한국의 모터사이클 문화가 매니아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니키)가 여러분께 오토바이 말씀(?)을 전하고자 직접 기사를 쓰게 되었다.
기사를 쓰려니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오토바이는 크게 ‘오프로드’와 ‘온로드’로 나뉜다. 하지만 같은 오토바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예전에 나의 일본인 친구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친구라고 소개해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온로드(로드 레이스)를 타는 친구였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오토바이라고 다 같은 오토바이가 아니야!”
그렇다. 오토바이임에도 이렇게 다른 이유는 태생(胎生)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모터사이클 시합의 형태를 먼저 갖춘 것은 로드 레이스가 아니라 오프로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우리가 아는 아스팔트 길이 흔치 않았기에, 처음 양산된 바이크들은 길이 아닌 곳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산과 들, 언덕에서 유럽의 젊은이들이 스피드를 겨루던 것이 오프로드의 시작이니, 당연히 오프로드가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오토바이크(AUTOBIKE)’가 일본식 영어라는 건 다들 아실 것이다. 원래 ‘모터사이클(MOTORCYCLE)’이 맞는 표현이지만, 일본인들의 발음 특성상 ‘오토바이’로 굳어졌고 이것이 한국으로 건너와 표준어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잡지 타이틀이 <오토바이크>다. ^^*)
이번에 이야기할 ‘모토크로스’는 본래 산에서 오토바이 시합을 즐기던 유럽 사람들 중, “좀 더 스피디하고 테크니컬하게 즐겨보자!”라고 생각한 이들이 만든 장르다. 전용 트랙과 요철을 만들고 시간을 재서 순위를 가리는 게임, 그것이 발전하여 지금의 전용 머신을 타고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온 것이 모토크로스인 데 반해, 유럽은 트라이얼 → 엔듀로 → 모토크로스 → 로드 레이스 순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는 1904년 FIM(국제 모터사이클 연맹)이 발족한 후, 1913년 영국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식스 데이즈 엔듀로(ISDE)’가 최초의 공식 오프로드 경기 기록이다. ‘모토크로스’라는 명칭은 이후 프랑스 국제 시합에서 확정되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모토크로스가 엔듀로보다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본격적인 모토크로스 시합은 1924년 3월, 백파이프 연주로 유명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유럽인들의 다혈질적인 승부욕은 이 시합을 인기 있는 스포츠로 정착시켰고, 그 열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모두 내연기관을 이용하는데, 이 내연기관의 발전은 유럽에서 이룩했지만 이를 상용화하여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것은 일본 기업들이다. 일본 최대 기업인 혼다(HONDA)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가 아내를 위해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준 것이 혼다의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혼다 소이치로의 장남(혼다 히로토시)이 튜닝의 전설 요시무라 히데오(吉村秀雄) 씨에게 기술을 배워 지금의 **’무겐(MUGEN, 無限)’**을 만든 사실을 아는 분은 적을 것이다. 현재 무겐은 혼다를 기반으로 오프로드와 온로드 튜닝 파츠를 생산하며, 특히 자동차 튜닝 메이커로 명성이 높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지만, 이번 호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오토바이는 단순히 바퀴 두 개 달린 움직이는 자전거가 아니다.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현대 메커니즘의 결정체다.
오프로드 바이크의 심장, 서스펜션의 이해와 세팅
이번 겨울은 늦게 찾아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건강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모터사이클의 역사와 오프로드 시합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 왔으나, 이번 호부터는 오프로드 바이크의 전반적인 기계 구조와 테크닉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현재 국내외 국제급 선수들이 다져온 숙련된 기술과 필자가 공학적으로 습득한 지식 모두를 독자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되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나, 오프로드를 즐기는 라이더라면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주제로, 오프로드 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오프로드 서스펜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프로드 바이크란 무엇인가?
포장도로가 없던 시절 처음 발명된 오토바이는 거친 지면을 달리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에 맞는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개발되면서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되었죠.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각 용도에 맞는 전용 설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오프로드(OFF-ROAD)는 말 그대로 ‘길이 아닌 곳’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프로드 바이크는 온로드 바이크와 완전히 차별화된 설계를 가집니다. 지면과의 거리인 지상고를 높여 험로를 원만하게 통과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급경사나 진흙길처럼 접지력이 낮은 곳에서도 유리한 조건을 갖춘 바이크를 오프로드 바이크라 칭합니다.
오프로드 바이크의 생명은 서스펜션!
사람에게 다리가 있듯, 바이크에는 서스펜션이 있어 차체를 지탱합니다. 서스펜션은 바이크의 중심을 잡고 진행을 도우며, 지면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흡수해 라이더에게 전달되는 피로를 최소화합니다.
하지만 서스펜션의 역할은 단순한 충격 흡수에 그치지 않습니다. 엔진 출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죠. 아무리 엔진 성능이 좋아도 그 출력에 맞지 않는 서스펜션을 사용하면 차체가 흔들려 엔진 고유의 힘을 제대로 지면에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서스펜션은 크게 스프링과 **댐퍼(Damper)**로 구성됩니다. 스프링은 충격을 받아 수축했다가 다시 복원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 복원되는 움직임을 적절히 제어해 주는 장치가 바로 댐퍼입니다. 댐퍼의 원리는 주사기를 상상하면 쉽습니다. 파이프 안에 오일이 채워져 있고, 그 안에서 피스톤이 상하 운동을 할 때 미세한 구멍(오리피스)을 통해 오일의 흐름을 조절하여 움직임을 둔화시키거나 원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프링의 급격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스프링과 댐퍼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는 서스펜션이 됩니다.
많은 라이더가 서스펜션 세팅을 잘못하여 차체에서 튕겨 나가는 사고를 겪기도 합니다. 외국의 프로 선수들이 **”서스펜션은 생명이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스펜션 세팅의 오해와 진실
시판 차량에는 세밀한 조정이 가능한 ‘풀 어저스터(Full Adjuster)’ 타입과 조정 기능이 없는 일반 타입이 있습니다. 조정 장치(Adjuster)는 대개 드라이버나 다이얼로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어저스터에 표시된 ‘H~S’ 마크에 대해 흔히 ‘Hard(딱딱함)’와 ‘Soft(부드러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서스펜션 제조사들에 따르면 이는 복원되는 속도가 빠른 **’High(또는 Fast)’**와 늦은 **’Slow’**의 약자로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 서스펜션을 딱딱하거나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스프링 자체의 장력(Rate) 문제이지, 어저스터 조절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스펜션 세팅 팁]
- 스프링 교체 여부: 프로 선수들은 자신이 주행할 코스의 가장 큰 점프대에서 착지할 때 서스펜션이 끝까지 수축하여 휀더에 닿는지(바텀 아웃)를 보고 결정합니다.
- 체중에 따른 세팅: 표준 세팅은 일반적인 체중에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 체중이 100kg 이상이라면 반드시 강도가 높은 하드 스프링으로 교환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세팅의 중요성: 해외 프로 선수들도 시합 전날 3~4시간을 오직 서스펜션 세팅에만 쏟아부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입니다.
세팅의 기준, 1G(Sag)란?
모터사이클은 앞뒤 서스펜션의 균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유격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코너를 돌 때 선회성이 떨어지거나 험로 주파 능력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여기서 가장 기초가 되는 기준이 **1G(일명 ‘새그(Sag)’ 세팅)**입니다. 오토바이에 라이더가 올라탔을 때 체중에 의해 서스펜션이 자연스럽게 내려앉는 수치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몸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바이크라도 라이더에 맞춰 이 유격을 반드시 조정해야 합니다. 이 기초적인 세팅이 어긋나면 바이크가 라이더를 거부하고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파리-다카르 랠리: 사막의 모래바람을 가르는 위대한 도전
전 세계 모터스포츠 선수들의 꿈인 ‘파리-다카르 랠리’. 90년대 초반 ‘죽음의 랠리’라는 오명(汚名) 속에서도, 지금까지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궁극의 도전 과제로 남아 있는 경기다. 유럽의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자동차와 모터사이클들이 사막에 도전장을 던지는 이 경기는, 일반 차량이 10년 정도 운행해야 발생할 법한 모든 기계적 트러블이 단 며칠 만에 나타난다고 할 만큼 가혹하다.
기술력의 시험대이자 메이커의 자존심
파리-다카르 랠리는 세계 최장거리 랠리 시합이기에 차량의 내구성과 각 메이커의 기술적 세팅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무대다. 따라서 개인뿐만 아니라 자동차 및 모터사이클 메이커들이 자사의 기계 산업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가해 왔다. 일본 미쓰비시의 ‘파제로(국내 갤로퍼의 원형)’가 4륜 구동 기술로 유럽의 강호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창시자 티에리 사빈과 랠리의 시작
이 위대한 여정은 창시자 **티에리 사빈(Thierry Sabine)**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과 모험을 사랑했던 그는 모터사이클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며 **”운명에 도전하는 문을 여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모험심은 10,000km 대장정의 기틀이 되었고, 1978년 조직위원회가 구성된 후 1979년 역사적인 첫 시합이 열렸다.
경기는 이륜차(모터사이클), 승용차(4륜 구동 포함), 지프, 대형 트럭 부문으로 나뉜다. 모터사이클이 가장 먼저 출발하고 승용차, 트럭 순으로 이어지는데, 맨 마지막에 출발하는 트럭은 시합 도중 리타이어(중도 탈락)한 선수들을 구조하는 역할도 겸한다.
대한민국 라이더, 사막의 주인공이 되려면?
인간과 기계의 사투가 벌어지는 이 죽음의 랠리에 도전하려는 이들을 위해 준비 과정을 정리해 본다. (본 내용은 필자의 전문 분야인 이륜차 부문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1. 라이선스와 참가 신청 국내 정식 선수라 할지라도 국제 모터사이클 연맹(FIM)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 다카르 랠리 조직위원회(A.S.O)는 FIM 정식 회원국의 협회에서 발급한 선수 라이선스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국내 협회를 통해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A.S.O 사무국에 참가 신청을 하고 참가비를 납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카르 랠리 참가 패키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개척자 정신으로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황무지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 또한 모험의 일부로서 충분히 빛나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2. 서류 및 비용 준비
- 여권: 가까운 구청이나 여행사를 통해 신청한다.
- 참가 신청: 공식 홈페이지(www.dakar.com)에서 양식을 내려받아 팩스나 온라인으로 신청한다.
- 항공권: 프랑스 파리행 티켓을 구비한다. (2006년 1월 기준 약 70만 원 선)
- 머신 확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랠리 전용 머신에 대한 정보 수집이 필수적이다.
3. 바이크 선적 및 운송 현지 렌털은 연고가 없는 아마추어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본인의 바이크를 보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항공보다는 선박 운송이 일반적이지만, 모터사이클은 세관 통관 절차가 까다로우므로 전문적인 운송 업체와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예산과 스폰서십 아마추어 참가비는 약 11,700유로(당시 기준)이며, A.S.O에서는 이를 세 번에 걸쳐 분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참가비에는 숙식비, GPS 렌털비, 사막 구간 연료비, 차량 운송비 등이 포함되지만, 전체적인 물류비와 유지비를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하므로 개인 스폰서를 확보하는 것이 참가의 관건이다.
5. 비자 문제 프랑스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나, 랠리 코스인 아프리카 국가들(모리타니, 말리, 기니 등)의 비자는 각국 대사관이나 여행사 대행을 통해 반드시 사전에 발급받아야 한다.
니키의 전일본 모토크로스(JMX) 참관기 (상)
고속정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따뜻한 남쪽 나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전일본 모토크로스 경기를 위해 가슴 뜨거운 사나이들이 모여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급히 일본행 배편에 몸을 실었다. 6월 9일, 부산에서 출발하는 고속정을 타고 후쿠오카로 향하는 내내 마음은 이미 모토크로스 경기장에 가 있었다.
일본 MFJ(일본 모터사이클 협회)가 주관하는 **’전일본(全日本) 모토크로스 챔피언십’**은 현직 프로 라이더들이 총출동하는 대회다. 일본 전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연간 성적(포인트)을 쌓기 위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최고 권위의 레이스다. 일정은 토요일 예선, 일요일 본선으로 치러지며 규모와 진행 면에서 아시아 최대 수준을 자랑한다.
일본에서 6년여간 거주하며 경기장을 찾던 때와는 달리, 이번 방문은 한국 오토바이 씬의 소식을 전하는 필자에게 더욱 설레는 기회였다. 금요일 오후 마지막 배편으로 도착한 후쿠오카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국제 B급 라이더로 활약 중인 일본인 친구의 마중을 받아, 곧바로 구마모토 HRC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프로의 세계, 패독(Paddock)의 풍경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든 선수 전용 공간인 ‘패독’에 자리를 잡았다. 전·현직 프로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국에서 온 필자를 반겨주는 이들과 담소를 나눴다. 일본 역시 경제 침체로 레이스 환경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캠핑카와 서포트 트럭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팀 단위로 움직이며 전용 서포트 차량 내에서 정비와 숙식을 해결한다. 일반 선수들도 ‘하이에이스(Hiace)’ 같은 원박스카 내부를 개조해 숙박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밤 12시가 넘어가자 국제급 선수 한 명이 다가와 내일 예선을 위해 휴식을 권했다. 필자 역시 친구의 차 안에서 잠을 청했는데, 한국 경기장의 밤 풍경과는 사뭇 다른 적막함에 놀랐다. 누구 하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다음 날의 경기를 위해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모습에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 특유의 민도와 프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을 깨우는 머신의 굉음
다음 날 새벽 6시, “부앙~ 부드드득!” 하는 깨끗한 배기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정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정교하게 튜닝된 레이스 머신의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정비가 잘 되었는지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 요시무라 히데오 (요시무라 미션 창업자)
머플러 제작의 전설 ‘요시무라’의 말처럼, 정밀한 기계 데이터가 발달하기 전부터 레이싱 세계에서는 소리가 곧 머신의 상태를 말해주는 척도였다.
토요일 예선을 통과해야만 일요일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기에, 선수들의 얼굴에는 금요일의 여유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미국에서 활약하다 복귀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나리타 아키라(Narita Akira) 선수조차 캠핑카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연습 주행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만큼 성적에 대한 압박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철저한 준비와 시스템
예선은 오전 9시부터지만, 동이 틀 때부터 연습 주행이 시작된다. 클래스별로 나뉘어 스타트 게이트에서 한 명씩 출발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주최 측에서 약 4년 전부터 선수들의 바이크 외관과 정비를 위해 상시 물탱크를 비치해둔 점이 돋보였다. 선수들은 연습 주행 후 즉시 세차를 하고 오일 교환, 타이어 교체, 브레이크 패드 점검, 카뷰레터 세팅 등을 쉼 없이 실시한다.
오전 8시, 선수 등록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리고 9시가 되자 본격적인 예선전이 펼쳐졌다. 화려한 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스타트 게이트에 정렬한 선수들의 모습은 어제의 평범한 청년들과는 완전히 다른 ‘전사’의 모습이었다.
최근의 국제적인 추세에 맞춰 스타트 게이트 바닥은 콘크리트로 평평하게 시공되어 있었다. 이는 노면 상태와 상관없이 공정한 스타트를 돕기 위한 설비다. 전직 HRC 라이더였던 오츠카 선수의 말처럼, 이제 하드 팩(Hard-pack) 노면은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시아 모터스포츠의 정점, 전일본 모토크로스의 본격적인 경기 내용은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니키의 전일본 모토크로스(JMX) 참관기 (하)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느끼는 모터스포츠의 열기
가장 진보된 모토스포츠 역사를 간직하며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해온 나라, 일본. 가깝고도 멀다는 그곳의 열기가 한국에 있는 필자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일본 방문이 한두 번이 아님에도, 출국 전의 설렘과 긴장감은 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이번 참관은 개인적인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와 맞물려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부산항에서 고속정으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후쿠오카. 쓰시마섬 근처에서도 휴대폰 신호가 잡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가까운 두 나라의 관계를 다시금 실감했다.
일본 모토크로스의 역사와 위상
전일본 모토크로스 챔피언십은 1964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1967년부터 시리즈 전(Series)의 형태를 갖추고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개최되어 왔다.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의 레이싱 팀부터 작은 이벤트 경기까지 합치면 그 저변은 가히 압도적이다.
일본은 일찍이 본토인 유럽으로 진출해 기량을 겨뤄왔다. 아시아인으로서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고 유럽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유일한 일본인, ‘와타나베 아키라(Watanabe Akira)’ 선수의 존재는 일본 모토크로스의 탄탄한 기초를 증명한다. 시·군 단위 예선을 거쳐야만 비로소 전일본 무대에 설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는 만큼, 이 대회의 규모와 역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구마모토의 명물 말고기와 한일 공통점
구마모토에서 이틀 밤을 보내며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지역 특산물을 대하는 자세다. 남쪽 깊숙이 위치한 구마모토는 말고기(馬刺し)로 매우 유명한 지역이다. 시합 참가자들과 서포터들이 입을 모아 말고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정력제를 찾아 헤매는 한국의 어른들을 보는 듯해 친숙한 웃음이 났다. 동행한 일행이 권한 말고기 회 한 접시를 예의상 ‘널름’ 삼키듯 먹어 치운 에피소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본선의 하이라이트: 기술과 마케팅의 각축장
본선 당일, 토요일 예선 때는 보이지 않던 제조사 레이스 퀸들과 프로 팀 부스들이 화려하게 들어섰다. 각 메이커의 홍보 판촉물이 쏟아지며 본선의 막이 올랐음을 실감케 했다. 갤러리 수도 예선의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가족 단위로 의자와 음식을 챙겨와 명당을 찾아 관람하는 모습은 부러움과 시샘이 동시에 느껴지는 선진적인 관람 문화였다.
경기장 관리는 철저했다. 특히 선수 보호를 위해 패독(Paddock) 입구부터 경비원의 제재가 엄격했다. 야간에도 경비원들이 붉은 유도봉을 들고 순찰하는 모습 덕분에, 선수들이 차 문을 잠그지 않고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기밀과 개방 사이: 제조사의 치열한 경쟁
세계 4대 메이커인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는 매년 이곳에서 신차 시판 전 모델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한다. 특히 이번 대회의 이슈는 ‘전자제어 연료분사(Injection)’ 타입 모델이었다. 카뷰레터 방식에서 인젝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오토바이 시장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었다.
프로 머신들을 가까이서 살펴보니 티타늄 부품의 사용이 눈에 띄게 늘었다. 4행정 바이크의 헤드 부분은 물론, 스텝(Step)과 프런트 쇼크 업쇼버(Front Shock)에도 블랙 코팅이 입혀진 티타늄 부속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메이커 간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 같은 팀 선수에게조차 신기술이 적용된 머신의 상세 내용을 비밀로 한 채 출전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에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히려 기술 데이터를 공개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국제 A급 프로 라이더 ‘타카하마 류이치로(Takahama Ryuichiro)’ 선수의 안내에 따르면, 예전에는 감추기에 급급했던 세팅 데이터와 선수 프로필, 고화질 사진 등을 패독 앞에 크게 게시하여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 최고의 모터스포츠 시스템을 갖춘 일본에서의 참관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단순한 경기를 넘어 기술과 문화,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녹아있는 그들의 현장은 한국 모터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니키의 전일본 모토크로스(JMX) 참관기 (완결)
안전을 위한 코스의 진화
시합장마다 관람과 만남을 목적으로 다니다 보면, 어느새 젊은 혈기 속으로 빠져들며 필자의 손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땀이 배어 나온다. 구마모토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코스의 레이아웃이었다. 과거의 국제적 추세가 높고 화려한 점프대나 가혹한 워시보드(Washboard)를 강조했다면, 이번 대회는 확연히 달랐다.
일본에서도 과거 대형 인사 사고가 몇 차례 있었기에, 주최 측은 라이더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점프대의 사이즈를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 화려한 볼거리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일 수 있으나, 라이더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게 치솟는 점프대는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보다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설계된 점프대가 눈에 띄었다. 진입부에서는 커 보이지만, 착지 지점을 흙으로 충분히 메워 스피드가 부족하더라도 위험하지 않게 고안되었다. 또한, 과도한 과속을 막기 위해 코너 탈출 직후나 대형 점프대 다음에 연속적인 작은 점프대를 배치했다. 이러한 변화 덕분인지 전국 규모의 치열한 시합임에도 큰 부상자 없이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낮고 멀리 뛰는’ 현대적인 라이딩 테크닉의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마을 원로들과 선배들의 자원봉사, 그 장인정신
넓은 경기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쓰레기를 줍고 정리하는 할머님들을 볼 수 있었다. 지역 원로이자 마을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봉사자들이었다. 알고 보니 경기장 곳곳을 지키던 연령대 높은 경비원분들도 모두 마을을 위해 힘을 보태는 분들이었다.
특히 깊은 인상을 준 것은 ‘M’이라 쓰인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들이었다. 2인 1조로 바이크를 타고 돌며 낙오자나 부상자를 확인하고, 코스에 떨어진 돌 하나까지 치우는 이들은 알고 보니 왕년에 현역 선수로 활동했던 선배 라이더들이었다.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일본 모터스포츠를 지탱하는 진정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 또한 감동적이었다. “아, 32번 선수 넘어졌습니다! 제발 다치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10년 넘게 마이크를 잡아온 할아버지였다. 선수들의 프로필과 경기 흐름을 꿰뚫고 있는 그의 해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스 안쪽 상황까지 생생하게 그려내 주었다.
무엇이 그들을 프로로 만드는가
경기가 끝나고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코멘트에서는 진정한 프로의 향기가 났다. 2위 선수는 “분하다,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라며 승부욕을 숨기지 않았고, 우승자 나리타 아키라는 감상 멘트 중에도 “제가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야마하(YAMAHA) 머신이 좋기 때문입니다!”라며 스폰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실력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 그것이 바로 프로였다.
다가오는 인젝션 혁명과 정비 문화의 변화
이번 시합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상당수 머신이 기존의 카뷰레터(Carburetor) 방식이 아닌 자동차와 같은 ‘인젝션(EFI)’ 타입을 시판 전 테스트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오프로드 머신도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과거에는 정비사의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컴퓨터와 스캐너를 활용해 수리하는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다. 이러한 ‘인젝션 혁명’은 전 세계 오토바이 샵의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그 진화의 시작을 이곳 일본에서 목격한 셈이다.
선진적인 시스템과 오랜 경험,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헌신적인 봉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일본 모터스포츠의 현장을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우리 한국 모터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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