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3월 19일 작성한 이윤훈niki 본인의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90년대 초중반, 주유소에서 기름을 석유통에 담아 가방에 넣고 경기장을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때만 해도 리터당 500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새 1,600~1,800원을 호가하는 시대가 되었군요.
오프로드뿐만 아니라 모든 내연기관에 있어 휘발유는 사람이 먹는 밥과 같습니다. 엔진에는 굉장히 민감한 물질이죠.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오래된 휘발유나 2T 오일을 믹스한 채 몇 주 동안 방치한 오토바이를 그대로 운행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봅니다.
우리나라처럼 술(酒)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김 빠진 맥주나 오래된 소주는 마시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질 좋고 목 넘김이 좋은 술을 고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죠. 그런데 우리네 오토바이에는 정작 좋은 휘발유를 넣고 계신 분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오래된 연료는 폭발 시점이 달라져 엔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스로틀을 감아봐도 엔진의 반응이 시큰둥할 수밖에 없죠. 이것은 요즘 판매되는 일반 휘발유에서 더욱 확연히 느껴집니다.
90년대만 해도 주유소마다 고급 휘발유와 일반 휘발유를 함께 팔았는데, 당시의 일반 휘발유는 붉은색을 띠며 증발 속도가 엄청나게 빠를 정도로 성분이 강력했습니다. 비닐 컵이나 페트병에 담아두면 통이 녹아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80년대 들어 정부의 발표와 함께 납 성분을 제거한 ‘무연 휘발유’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다 2001년쯤 입국했을 때, 오스트리아의 KTM 머신들이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입된 KTM들이 고속에서 부조 현상(찜빠)을 일으켜 업계에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머신의 문제가 아니라 연료 문제였습니다. 정식 에이전트가 아닌 병행으로 들어온 미국 사양 모델들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유럽 사양 모델들은 한국의 연료 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일본 레이싱 팀들과 교류하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선수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연료’를 문제 삼습니다.
2006년 KMF 시합에 참가했던 타무라 씨는 XR250으로 첫 코스를 탄 뒤 “엔진 파워가 너무 없다”고 토로했고, 오츠카 선수 역시 “엔진이 더디고 덜 도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캬브레터 세팅으로 조절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연료는 복잡한 정제 과정과 고유의 첨가물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연료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점화 계통까지 손보지 않고서는 캬브레터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맵핑 조절이 가능한 자동차조차 연료가 바뀌면 세팅에 애를 먹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1,500cc급 렌터카를 빌려 타보면, 성인 5명을 태우고도 가속 페달을 살짝만 밟으면 시속 140~160km가 거침없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차가 일본보다 못 만들 이유가 없는데, 결국 연료 하나가 이 차이를 만듭니다. 언덕길도 힘겹지 않고 연비 또한 최고입니다. 이번 히로시마 경기장 왕복 1,000km 주행에서 연료비로 8,000엔도 채 쓰지 않았던 비결은 결국 옥탄가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휘발유’는 사실 레저용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즐거운 라이딩과 강력한 엔진 성능을 원하신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신선한 고급 휘발유’**를 넣어주세요.
고급 휘발유를 사용하면 1단으로 갈 곳을 2단으로 치고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엔진 수명이 늘어남은 물론, 미세 진동이 줄어 볼트 풀림이나 핸들 진동도 눈에 띄게 완화됩니다. 특히 엔진 헤드의 밸브들이 가장 좋아할 것입니다.
몇 푼 아끼려다 엔진을 망치지 말고, 생각을 바꿔 행동해 보세요. 프로가 되는 길은 이런 작은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니키 올림 –
